Team Progressive

작성자 : WARP-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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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WAI meets MIRAI - 언니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October 10, 2015
Groovin' Magic - ROUND TABLE Feat. Nino

신을 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신에게도 소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빌면 좋은 것일까? 소원을 품은 채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유성이 언제 떨어질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유성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내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톱을 노려라2! 1화, ‘언니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中≫

지금 와서 읊기엔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릴 때부터 SF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했습니다.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오타쿠 라이프 인증을 하라 하면 정말 끝도 없이 읊겠지만, 애초에 제 덕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기도 하고, 해봐야 저 위의 머나먼 어르신들한텐 한참 밀리니까 그것만큼은 참겠습니다.

이 루트를 탄 오타쿠들이 다 그렇듯, 우주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주제에 가방에 열역학과 양자역학에 관한 서적을 꾸역꾸역 쑤셔 넣고 다녔고, 중학생 때엔 고휘도 LED를 사서 늘어놓고,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광선검을 만들어 우주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천체 망원경을 처음으로 들여다보았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함 그 자체. 커벌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돌리며 로켓을 몇 대나 박살을 냈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주는커녕, 당장 서울에 올라가는 데에만 항상 지갑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입장. 이번 인생의 꿈은 우주의 한복판에서 ‘창백한 푸른 점’을 내려다보는 것인데, 이래서야 우주 파일럿은커녕 왕복선 티켓 부스러기라도 만져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 돈이 없어 덕질도 제대로 못하는 오타쿠 워너비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주 시뮬레이터, 인터넷에 모든 열정을 때려 넣기에 이릅니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동안은 얼마만큼이나 좋아하는 우주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영양가나 심도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흥미 본위로 그에 대해 같이 떠들 친구들도 있었죠. 그것을 찬양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내다 팔아 인터넷 라이프를 부지하는 괴상한 그림이 탄생하기도 했네요. 한참 꿈을 드높이다 시궁창인 현실에 좌절하고, 네트워크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을 구겨 넣는 것, 디테일 상의 사소한 차이가 있기야 하겠지만, 아마 우리 주변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일일 것입니다.

바야흐로 세상은 대-인터넷-해적 시대, 어쨌거나 그것들은 한동안은 쓸모없는 데이터를 뽑아내며 ‘잉여’라는 이름으로 좀 여기저기 얼굴이 팔려나가기도 했던 모양입니다만, 슬슬 그마저도 정말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모니터 앞에 앉는 순간 배고픔이 사라지고 모든 병이 낫는다 해도, 사람은 일을 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돈이 되는 쪽으로 몰아볼까 다들 참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을 끌어다 ‘콘텐츠’를 판다는 명목의 회사를 차려볼까도 했고, 자주 제작 상품을 신나게 찍어보기도 하고, 공연도 해보고, 하여간 모두들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했는데, 그것들이 ‘생존’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도움을 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산 운운하며 찬양했던 것과 달리, 데이터는 그저 데이터였습니다. 어떤 해석 장치를 통해 누군가에게 표현되는 것을 기다리는, 눈앞에 실현되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능성’. 비트코인은 언젠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에 의해서만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었고, 집행검에 천만원대의 돈이 오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검-권력’이기 때문이었죠.

간만에 음악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쓰지도 않을 샘플을 잔뜩 받아놓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고, 음악을 만들어보기까지 했으며, SoundCloud에서 Favorite을 얼마나 폭발적으로 찍어봤자 서재 한 구석에 클래식과 재즈 LP를 수 백 장 쌓아둔 이들 앞에선 기가 죽어버리기 마련. 그런 후, 마지막의 마지막엔 ‘음악을 소중히 대할 줄 모르는 것들’이란 비아냥거림이나 듣고 사는 것이 바로 나, 너, 우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게 될까요? 그 짜증나는 얼굴에 맞서 엄청난 노오오오력으로 진짜 실물과 자본을 확보해 롯본기 빌딩 표면에 여동생의 초상을 내걸고, 나아가 우주로 나가 새 시대의 프리메이슨이 되려 할까요? 친구들과 이에 대해 떠들며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돌아온 답은 ‘차라리 올림포스에서 불을 훔쳐오는 것이 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별을 움직이는 자여, 인류는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지구를 희생시키는 방법 외에 인류를 구할 방법은 없어.”

“설령, 살아남기 위해 인류가 ‘변동중력원’ 그 자체로 진화한다 해도 말인가?”
“그런 건 살아남은 놈들이 정하면 되잖아.”

≪톱을 노려라 2! 6화,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데이터’라는 과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왔던 그런 이들 중, Team Progressive (이하 TPRO)는 면한 세대로서의 해답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현대미술 온리전 ‘굿-즈 2015’에 아카이브 두 점을 출품하기로 했습니다.

‘KAWAI’는 동인음악에 대한 TPRO와 그 친구들의 모든 행적이 담긴 아카이브입니다. 백색 기내용 캐리어를 하나 준비해, 겉엔 그 역사를 증명하는 스티커를 도배했고, 안엔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들어온 실물 음반과 포스터, 원본 스티커와 같은 굿-즈를 잔뜩 배치했습니다. 바로 그 모든 것의 안에, 조그마한 나무 상자에 담긴 USB 드라이브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누구라도 혹할만한 ‘마스터즈 컬렉션’을 준비했다고 하네요.

한 편, 그 옆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가 하나 마련되어있을 것입니다. 어떤 전통에 따라, 그 안에는 보통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들어있어야겠죠. 그에 따라, 이들은 굿-즈 2015에 대해 각자가 현장에서 포착한 모든 사진과 영상, 텍스트, 환경에 관한 정보를 우겨넣었다고 하네요. 정말로 굿-즈 2015가 무언가를 마무리 하는 자리가 된다면, 아마 이것은 그에 대한 ‘졸업 사진 앨범’이 되겠죠.

모든 실물을 뒤로 하고 오로지 훅 불면 날아가는 ‘데이터’로서 존재하는 우리의 추억과 시야에 대해, 우리에 대해 알지 못하던 어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또 그것을 어떻게 대하게 있을까요? 그건 그렇다 쳐도, 부탁을 받아서 한 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뻥을 쾅쾅 쳐줬는데 아무도 안 집어가면 다들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