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Progressive

작성자 : RM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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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HN × 박진배 인터뷰

October 19, 2015

한 때 Silhouetti라는 이름으로 동인 음악의 흐름을 마주하고, 이후엔 ESTi란 이름으로 다시 게임 음악의 한중간에 서게 된, 또 지금은 LOVE LAIKA의 진짜 ‘P’이자 마비노기 TCG에서 카드로 등장해 한참 얼굴을 팔고 계신 작곡가 박진배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쌍으로 바쁜 현대인인 탓에 메신저와 서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런 두서 없는 포맷의 인터뷰에도 흔쾌히 응해주신 박진배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 요컨대 할배의 옛날 이야기, 뭐 그런 건가요?

R: 뭐 반쯤은 그렇게 되겠죠? 짝짝짝.

E: 그런데 아마도 저도 기억이 잘 안나서 바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찾아서 구체적인 연도나 순서같은 것이 정확히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할텐데.

R: 역시 시간이라는게 무섭죠. 어차피 무슨 돈 주고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러프한 인터뷰니까 기억이 잘 안나시는 부분은 그냥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답변해주셔도 되어요. 아마 무수한 댓글과 멘션의 산이 알아서 해결해주지 않을까요? (웃음)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 넵.

R: 그러면 우선, 개요부터 들어가볼까요. 음악을 하면서 동인 음악이라는 흐름을 인지하신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E: 아마 1996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사운드 캔버스, 그러니까 ‘Roland SC-88’이 한국이 보급된 이후, 96년경 일본에서 제작된 MIDI 데이터들, 일본식 표현으로 ‘耳コピー’라 하는 것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거든요. 당시 한국에서도 이미 ‘오렌지 로드’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같은 애니메이션의 사운드 트랙을 단순히 노래가 좋다는 이유로 카피해서 음원 파일을 만드는 것이 소규모로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R: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네요?

E: 그런데 거기에 뜬금없이 압도적으로 퀄리티가 좋은 데이터들이 나타났는데, 정작 제작자의 명의가 기록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본식 영어의 MIDI 파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일본에도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이 있구나~’ 했던 정도였죠. 이건 저뿐만 아니라, 당시 MIDI 음원이나 컴퓨터 음악에 관심을 갖고 계시던 분들이 전부 다 인지하던 사실이었습니다.

R: 당시 한국에선 그러한 파일들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도 기억하시나요?

E: 보통은 그냥 ‘MIDI 음악’ 이나 ‘MIDI 파일’등, 그냥 그 포맷의 이름 그 자체로 불렀어요. 그 이전에 특별히 ‘Ad Lib’이라는 카드를 이용해서 만든 음악들은 ‘애드립 음악’ 이나 ‘애드립 파일’ 정도로 불렀는데, 이 때는 국내에서 한정적으로 떠도는 것들이 많았고, 일제 파일의 유입은 없었습니다. 그 존재를 인지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이후 사운드 캔버스와 MIDI 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이후의 이야기 같네요. 대충 인터넷이 개통한 시기와도 비슷하죠.

R: 하기사, 그 전엔 전부 PC통신으로 교류했었겠네요. 실제로 사전 조사하면서 컴퓨터 음악 동호회, ‘셈틀가락’ 얘기는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E: 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이런 것들. MIDI 파일도 거기에서 주고 받았고, 실제로 나중에 ‘SoundTeMP’ 등도 전부 그 쪽에서 연이 닿게 되었죠.

R: 그러면, 어떻게 보면 단순히 그저 바깥에 존재하는 데이터로부터 그 존재를 추측한 것에 불과한데, 그런 흐름, 즉 일본의 동인 음악의 흐름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E: ‘그 흐름에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못해도 97년 겨울 이후겠네요. 왜냐면 97년 겨울에 코미케를 처음 방문했는데, 그 전까지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아예 다른 세상이었거든요. 개념상 완전히 외계였죠. 파일이나 존재 자체는 확인했지만, 가끔 좋은 데이터가 유입되면 그냥 우오오! 하는 정도의 대상이랄까?

R: 역시 코미케는 한 번쯤은 꼭 가봐야하는 것 같아요.

E: C53이었을거에요, 아마. 에반게리온 극장판 때문에 난리가 났던 해였죠. R: 코미케는 그냥 관광차 갑자기 가게 되신? 아니면 뭔가 가봐야겠다고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가신건가요?

E: 혼자 간건 아니었구요, 당시 저보다 6~7살은 많은 대학생 오덕 형님 두 분과 같이 동행했어요. 고딩인 제가 막내였죠.

R: 역시, 언제나 아재들 영업력이 제일 무서운 법이네요.

E: 근데 그 아재들이 학벌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부모님 입장에선 ‘오~ 믿음직한 형들이랑 일본가는구나, 아들 보내는데 문제 없겠다’하고 그냥 해외연수 보내듯 보낸건데, 하필 거기가 코미케였고…….

R: 쿰척쿰척…….

E: 뭐 그랬던겁니다.

R: 가서 본 것중에 특별히 인상깊었던 무언가가 있었나요? 특히나 동인 음악 관련된 것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뭐 그냥 기타 아무거나 다른 것이라도?

E: 투하트가 97년 5월인가에 나왔었죠? 거기에서 본건 아닌데, 투하트 동인지들을 잔뜩 사던 형님들을 따라 투하트를 하게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존재를 인지하고, 한국에 와서 카피로 유입된 게임을 하다가 음악을 듣게 되는 그런 테크트리였죠.

R:시모카와 사장님이 정말 죄가 많네요. 위겐도 하필 투하트빠로 시작했었다고.

AKKO - Brand New Heart (from To Heart)

전설의 시작의 시작.

E: 그리고 제가 지금은 퇴물입니다만, 당시엔 좀 미디파일을 잘 만들었는데요.

R: 아, 이건 캡쳐해야겠다. (웃음)

E: 겨울에 일뽕을 받고 와서 만들었던 히트작 중 하나가 ‘Brand New Heart’ 였던 것 같은데요, 그게 97년, 98년 언저리일텐데 영 정확치가 않네요. 여튼 투하트를 알고나서 만든 카피 겸 어레인지곡이었는데, 원곡 드럼 리듬이 그런 모양새가 아닌데, 별로 코드를 꼬아내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소리가 좋다는 이유로 SC-88 Pro에 있던 TR-909 키트로 하우스 리듬만 깔았던 그런 게 있었어요.

R: 정작 저는 옛날에 BMS 만들던 시절에 한번 보고 그 뒤론 못 본 곡이네요. 근데 투하트에 SC-88 Pro라는게, 시대적인 위치 외엔 그다지 별 상관 없는 것 같은데도 묘하게 자주 접하게 되는 조합이네요. 위겐도 그 탓에 한동안 그걸 사네 마네 안달이 나있거든요. 거기에 이번에 SC-88 관련 앨범 참가하신 것도 하나 있지 않았나요?

E: 네, 맞아요. 그 시절에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만든 앨범입니다. Back to the 90’s!

R: 추억!

E: 여튼 그렇게 어레인지를 만들어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한국의 미디 동호회 사람들에게 그냥 들려주었는데, (아마 요즘의 사운드 클라우드랑 비슷한 개념일 듯?) 제법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게 무슨 노래냐’, ‘어디에 나오는 노래냐’고들 다들 많이 물어보셨었죠.

R: 좀 날리셨네요.

E: 하지만 차마 그게 야겜의 노래라고는 말할 수 없었고…….

R: (웃음)

E: 일본의 유명한 무슨 게임에 나오는 곡을 내가 좀 각색했다! 이스 같은 거! 뭐 이런 식으로 뿌렸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래도 그 당시 그 바닥엔 이스 음악이 좀 유명했으니까요.

R: 하기사, 무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하네 마네 갑론을박 했을 시절일테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군요.

E: 근데 또, 당시엔 이스나 동급생이나 좀 비슷한 개념이었어요.

R: ?!

E: 진짜 극소수의 오덕들 외엔 실제 게임을 해볼 루트나 방법이 없어서, 대개는 사운드 트랙만 듣고 말았거든요. 지금처럼 게임을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까요. 정말 어떻게든 그 게임을 해보려면, 오프라인 모임 같은 데에 나가서 친한 사람들끼리만 돌리는 플로피 디스켓을 카피해야 간신히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그에 비해 가벼운, 작게는 5kb에서 많아야 10kb 정도의, 비교적 금방 주고 받을 수 있는 음원들은 실제 게임보다도 여기저기 자주 돌아다녔어요. 따라서 동급생은 정말 아름다운 이미지의 게임이 되었다는.

R: 미치겠네. (웃음)

E: 만약 개중에서 그림만을 올린대도, 아무래도 오늘날처럼 CG 전체를 올리기엔 용량이 너무 많잖아요?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용량도 한정되어있고. 그러다보니 개중에 예쁜 것들만 골라서 게시판에 올리게 되는데, 멋모르고 지나가다 잠깐 보는 사람들에게 남는 건 그냥 그런 레벨인 것이고. 정리하자면, 당시 일본 서브컬쳐 중 그렇고 그런 것, 또 아무리 그래도 그중에서 웰메이드 작품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파편들이 PC 통신망 안에 뿌려지고, 그런 와중에 그런 브랜드의 이미지들이 상당히 미화되었다는 그런 전개입니다.

R: 대략적인 맥락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E: 당시 기준으로 1MB의 파일을 다운로드하겠다는 건, 한 달 10만원어치의 전화요금을 각오하란 소리였어요. 현재 물가로 한 달에 40~50만원쯤 되겠네요.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R: 어지간한 플래티넘 수저들한테도 힘들 레벨이었군요.

E: 덕분에 당시 일본에서 정품 컨텐츠를 사들여오는, ‘플랫폼 홀더’ 계층엔 고학력 금수저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취향 등등도 그들의 입맛에 편중될 수 밖에 없었던게 90년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전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명작 야겜도 많은데 굳이 투하트같은 걸 뿌려댔으니까?

R: 실제로 저도 아니메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때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는 근엄후덕 아재들을 자주 봤던 것 같네요. 왠지 하나같이 에바를 싫어하셔서 뭘 재밌게 봤다고 하기가 참 어려웠던 분위기도 떠오르고요.

E: 저도 그 땐 그랬습니다. 부심을 부리려는 게 아니라 시점상 정말 딱 제가 에바 1세대였는데, 아무래도 터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죠. 바로 위에는 건담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한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제가 한국에서 최초로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카피한 사람이 되었고, 그게 BMS 제작자들 손에 흘러가서 BMS로도 돌아다니고.

R: 엥, 진짜요?

E: 이건 지금도 파일이 있고 제공이 가능합니다. 누군가 그 MIDI 파일을 녹음해서 BMS화 한 것. 그런데 사실 저는 또 BMS 세대는 아니에요.

R: 아무래도 BMS가 한국에서 흥하기 시작한건 조금 뒤였죠?

E: 네. 99년 이후였어요. 당장 이름부터가 BM’98’ 이었으니까요.

R: 그러고보면 MIDI 파일에 관한 이야기가 확실히 뭔가 이래저래 많았던 것 같은게, 실제로 예전에 미소녀 게임들 관련 공식 홈페이지의 파편을 주워서 놀곤 했는데, 공식 홈페이지인데도 구석구석에 막 MIDI 파일이 통째로 뿌려져있더라구요.

E: 네, 말씀하신대로 그런 것들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두기도 했어요. Falcom 게임들도 그랬었구요. 게임을 사면 음원들이 MIDI 파일로도 들어있었고, 그런데 사실 그건 음악의 소스 코드 그 자체에 해당하는 개념이니까 다들 그걸 가지고 놀기도 하고. 여러분과는 BMS나 mp3가 아닌 ROL, IMS나 MID 파일을 갖고 놀면서 시작한 세대라는게 다르겠죠.

R: 그렇군요.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하시기 전, 한국에서 이런 저런 상업 활동들에도 꽤 참여하셨는데, 당시 PC 통신 소모임으로부터 그에 연결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R: 이건 아마 일자리 궁한 제 또래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포인트 중 하나일 것 같네요. (웃음)

E: 아마 기억으론 97년 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에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의 음악을 맡게된 것이 첫 상업활동 경험었던 것 같은데요. 원래 그 작품을 맡기로 한 분은 그 때 아이디로 ‘bahamute’, 나중에 ‘elore’라는 아이디를 쓰시게 되는 황주은 님이었어요. 첫 창세기전의 음악을 맡으셨고, 나중엔 바람의 나라나 아스가르드같은 작품에도 참여하셨죠. 그런데 주은님이 그때 대입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중 당시 PC통신에서 제가 미디를 좀 잘 만든다는게 알려져있었고, 아까 말씀하신 셈틀가락에서 잘 알던사이고 하다보니까 소개를 받게 되었죠.

R: 아, ‘B-E’라는 이름도 몇 번 쓰시지 않았나요?

E: 네, 맞아요. 어쨌든 그렇게 두 살 어린 저와, 같은 동호회의 다른 형님이 대타를 뛰게 된 케이스였죠. 분량이 근 30여 곡 가까이 되는데, 도무지 입시생이 소화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 가운데 제가 한 10곡 좀 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곤 해도 당시엔 뭐 누굴 밀어주고 뭐고 하던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애초에 그런 걸 만드는 사람이 10명도 되질 않았으니까.

R: 그냥 대놓고 사람이 없었던 쪽이었군요.

E: 한국인 사클 계정 딱 10개라고 생각해보세요.

R: (웃음)

E: 그런데 또, 만들어진 걸 듣는 사람은 그의 10배에서 20배는 되었던 것 같네요. 당시 조회수 200 찍었다 하면 굉장히 히트한 쪽이었거든요.

R: 정작 사전 조사 돌릴 땐 그런 이름들이 다 뒤섞여서 사운드템프로 찍혀나와버려서 이런 내막을 알기가 어려웠어요.

E: 사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딱히 회사 같은 존재라기는 아니에요. 특히나 당시엔 그냥 동호회 게시판 이름 같은 쪽이었어요. 그냥 거기서 글쓰면 다 템프! 이런 거? 물론 상업적으로 데뷔하신 주된 3명은 실제 멤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령 포트리스 2 OST 가운데 가장 유명한 노래는 이석진 형님 곡이에요. 나중엔 프론테라 주제가를 만들기도 하셨죠.

R: 엇, 그랬군요. 정작 저는 예전에 위겐이랑 그 시절 PC통신의 찌꺼기들을 뒤지면서 ‘어~ 이게 사템 이 사람들 가운데 누가 쓴걸까~’하면서 맞추고 놀았는데. 그런데 90년대 물건들은 정작 미친듯이 뒤져봐도 확답이 나오는 경우는 몇 곡 안되더라구요. 라그나로크나 악튜러스쯤 가야 간신히 이름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제가 검색을 더럽게 못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E: 실제로 인터넷엔 거의 남아있질 않아요. 물론 제 하드에는 거의 전부 남아있으나, 영원히 타임캡슐로 묻어두기로.

R: 나중에 꼭 그 하드 경매에 올려주세요.

E: 제가 흥한 후에 2020년 경에 다른 전시회라도 열린다면…….

R: 그러고보니, 이전에 뵈었을 때 좀 젊었을 때(?)는 항상 ‘일본에 가야겠다’는 애티튜드를 갖고 작업을 해나가셨다는 이야길 하신 적이 있는게 기억나는데요, 실제로 일본에 드랍한 후엔 주로 루트로 작업을 선보이게 되었나요?

E: 그런데 사실 당장 2000년 즈음엔 딱히 ‘일본에서 게임음악 프로가 되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한적은 없습니다. 그 땐 직업의식은 커녕 학교 다니며 군대 갈 걱정하는 대삐리에 불과했어요. 다만 동인 음반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아, 내 곡이 파일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CD로 기록이 될 수도 있구나’를 체험하면서 점차 일본에서 뭔가 해봐야겠다 하는 마음을 갖추게 된 쪽이랄까요.

BEST SOUND of Game Music Library Vol.1 / GML Doujin Soundtrack,CD

데이터가 영속적이라는 것은 반쯤 뻥인 것이, 이런 걸 찾으려면 ebay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

BEST SOUND of GameMusicLibrary Special -Leaf-

같은 이유로 VGMdb엔 항상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 특별히 하나를 찍자면, 아마 이 씨디들에 제가 만든 미디 파일이 씨디 음원으로 가공이 되어서 수록되는 걸 듣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순서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한 쪽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투하트 ‘Brand New Heart’고, 다른 한 쪽은 이스 ‘Fountain of Love’ 어레인지.

R: 일뽕 폭발해서 만드셨다는 그 파일이 어쩌다 또 현해탄을 건너게 된 걸까요?

E: 당시 인터넷 개통 후에 홈페이지 붐이 일었는데, 특이하게도 제가 당시부터 일본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젼의 홈페이지를 동시에 운영했거든요. 그러면서 그동안 PC 통신에 올렸던 음악들을 인터넷에도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똑같은 내용을 일본어로도 올리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일본어로 뜬금 없이 “님 좀 잘 만드시네요, 한국 사람인가요?”’

R: 푸하하하하하!

E: 이어서, “저는 ‘Game Music Library’라는 포털을 운영하는, ‘Taisho’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당신의 홈페이지를 포털에 소개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저도 투하트 음악이나 이스 음악들 좋아합니다.” 그런 식으로 오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그 거대 포털에 제 홈페이지가 마치 요즘 네이버 광고 배너마냥 첫 페이지에 ‘신규 HOT 사이트!’ 하면서 뜨더라구요. 아마 그 곳을 통해서 일본의 미디족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대충 98~99년 경의 일이었던 것 같네요.

R: 대폭발! 어떤 기분이셨나요?

E: 아무래도 기분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고, 그보단 한국 홈페이지 방명록에는 항상 이상한 사람들이 꾸준글을 달아대서 귀찮았고, 그에 비해 일본어 홈페이지는 좀 평온하게 운영했던 기억이 있네요. 어쨌거나 이런 저런 건들을 계기로 요즘 사클 친구들처럼 어떻게든 ‘탈김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네요. 당시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한국에선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거의 아니메나 게임 OST만 듣고, 가요는 혐오하였고, 그렇다고 요즘처럼 다양하게 무언가를 입수할 채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R: 탈김치!

E: 그렇다고 꼭 ‘일본에 가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거창하게 다짐을 했던 것은 아니고, 뭔가 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담아두었다가 이제서야 물꼬가 트여 편하고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잔뜩 생겼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또, 그렇게 한 층 시야가 넓어지니까 당장 더 품질이 좋은 미디음원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아무래도 인간이 발전욕이란 것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당시의 저는 일본어가 조금씩 읽히기 시작하던 때였고, 그런 것들이 즐거워서 계속해서 무언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R: 요컨대 ‘재밌는 것 하고 싶고 잘 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이런 그림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E: 그렇죠. 아, 저는 MIDI 파일로 음악을 만들고 교류했기 때문에 게임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절 캐치했지만, BMS를 주제로 모이는 포털도 이미 당시에 존재했습니다. 물론 GML에 비하면 훨씬 소규모였죠. 그리고 그 이름은 바로 ‘Diverse System’…….

R: 으악. 익숙한 이름이 또. 디버스 시스템은 당시엔 어떤 모양새였나요? 사실 이제와서 말하자면 제가 처음 그 존재를 포착했을 때엔 트랜스 앨범만 줄창 내고 있어서 좀 짜게 식었거든요. 요샌 또 하드코어만 줄창 내고 있고. 간간히 재밌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E: 솔직히 말하자면 그땐 제가 BMS나 BM98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디버스 시스템은 좀 기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R: 아니, 왜요?

E: 전 이미 97년 겨울에 beatmania 1st MIX를 현지에서 돌려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BMS는……. 허접……. 무시…….

R: 이것도 캡쳐해야겠네요. (웃음)

E: 어쨌거나 초창기의 디버스 시스템은 지금 같은 레이블의 모양새가 아니라, 게임 뮤직 라이브러리처럼 오만 곳의 BMS 종자들이 모이는 포털 같은 모양새였어요. 메인 홈페이지가 있고, 그 아래엔 크리에이터들 링크가 있고, 신곡이 나오면 소개해주고, 뭐 그런 모양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R: 요컨대 그 시절의 pupuly 같은 것이었군요. 되게 이상한데서 자꾸 막 보던 것의 원형이 튀어나오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그런데, 이야기 하신대로면 계속 일본에서 활동을 지속하실 수도 있지 않았나요? 지금은 한국을 베이스로 활동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E: 일단 전 김치가 없이는 못 살기 때문에. (웃음)

R: 풉.

E: 일본에서 2005~2006년 경동인이 아닌 상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활발히 이런 저런 교류를 나누고, 점차 일본을 더 잘 알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그 전부를 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실제로 마주하게 된 환경 자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갭이 컸어요. 2005년이면 전 이미 NCSOFT에 있었거든요.

R: 어머, 대기업!

E: 물론 여전히 작품을 발표하는 것 자체는 일본이 압도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별개로, 생활 면에 있어서도 여기에서 누리던 모든 것들을 다 집어던지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R: 익숙한 걸 집어던진다는 게 참 어렵죠.

E: 거기에 더해, 제가 좋아하던 종류의 음악들이 기실 일본 사회 내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사실을 안 것도 타격이 컸습니다.

R: 요컨대 현자타임이 온 것이군요.

E: 어쩌면, 이렇게 위-아래로 지위를 가르는 개념 자체가 한국적이라 할 수도 있겠죠. 대체로 일본에서는 ‘생활 기반만 갖춰진다면 좋아하는 것 있으면 하면 되지~’하는 쪽에 가까운데요, 아마 그 탓에 제가 일반적인 인디 뮤지션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일본에서 활동을 계속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제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게임 음악’이었고,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에 종속되는 음악으로 게임이라는 ‘큰 궤’의 가치가 커야 그제서야 제 평가를 받을 수 있겠죠? 그런 상황이니, 막말로 ‘파이널 판타지 할 거 아니면 그냥 엔씨에서 하는게 더 나은 거 아닐까? 스퀘어에 취직하려면 너무 허들이 높고’ 하는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죠.

R: 언제나 현실은 무섭네요.

Nobuo Uematsu - 片翼の天使 (One Winged Angel, from Final Fantasy VII)

‘파이널 판타지 할 거 아니면 그냥 엔씨에서 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닐까?’

E: 사실 그 자체는 2002년~2003년 즈음에도 계속 고민을 했던 문제였어요. 2005년부터는 정말로 본격적인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또 동시에 저도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갭이 커진 것에 가깝고. 이전에 ‘bermei.inazawa’라는 동인 음악 친구와 교류를 했었는데, 게임이나 그런 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방향의 관심이 있다기보단 그냥 게임을 재밌게 하는 정도? 정말 한국의 인디 뮤지션같은 개념에서 조금 더 나아가 야겜을 좀 좋아해서 그런 것도 어레인지 해보고? 대충 그런 정도의 친구였어요. 어쨌거나 저도 이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가면서 거길 자주 요새로 사용하곤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그 집에 자주 드나들던 동인음악 작곡가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mirawi, ‘みらうぃ’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었어요.

R: 무적의 친구 집 워프.

E: 베르메이랑 ‘판다상 유치원’ 같은 것도 만들고 재밌게 놀았는데, 여튼 그렇게 놀던 와중에 문제의 미라위 씨의 진짜 직업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죠. 본명은 이시바시 와타루로, 팔콤의 사운드 스탭으로 활동했고, JDK의 멤버로서도 활동하셨던 분입니다. 게임업계의 박봉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동인음악을 하셨다고 했어요. 술도 엄청 좋아하셨고,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면 ‘한국 좋겠다~’를 연발하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R: ?!

E: ‘그렇게 존경하던, JDK의 멤버이고 Falcom에서 Ys BGM을 담당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프로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런걸 하고 있지?’ 하면서 혼란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답이 너무 심플해서 더 그랬죠. “회사 일이 좆같으니까!” 그렇게 그들을 통해서 점차 알게 된 것이죠. 생각보다 무수한 현업 종사자들이 업계에서 이런 저런 일로 시달리고 있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출구로 동인음악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들을.

R: 좀 익숙한 이름인데, 혹시 작년에 타계하신 분이 아닌가요?

E: 맞습니다.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쉰다고 모조리 때려치우고, 퇴사하고, 그러면서도 간간히 외주로 태고의 달인 음악 만들어주기도 하셨던 분인데, 결국 떠나셨죠. 어쨌거나 그 이후, 호소에 신지 선생님 작업실 놀러가서 더욱 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정말 너무나 허름한 작업실에 계시더라구요. 요샌 그래도 이사하셔서 좀 더 쾌적해지신 듯 하지만. 우에마츠 노부오 선생님도 비슷해요. 으리으리한건 스퀘어 작업실 뿐.

R: 세상에.

E: 어쨌거나, 사운드템프 형님들이 교보생명타워에 차렸던 2002~2003년경의, 방음 부스가 전부 갖춰져있고 멋진 콘솔들이 주루룩 늘어선, 그러한 작업실과 나름 일본 게임음악의 레전드가 운영하는 회사의 모습이 심각하게 대비되더군요.

R: 의외네요, 이건. 대체 왜?

E: 일본의 게임음악이나, 애니음악 크리에이터들이 갖춘 환경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굉장히 열악해요. 저도 처음에야 ‘음! 정말 검소하게 작업하시는군, 도인 포스!’ 이런 식으로 받아들였죠. 그런데, 저도 계속해서 일을 맡게 되고 전체적인 풍경이 눈에 차기 시작하니, 생각보다도 너무나 빠듯한 모양인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알게 된 것은 다들 90년대에는 분명 조금 더 유복한 환경에서 작업을 해왔다는 것. 요컨대, 세상이 바뀌면서 환경만이 낙후된 채로 남은 것이죠.

R: 실제로 그렇네요. 당장 90년대엔 게임 회사별로 사운드 팀으로 뭔가 되게 하려는 것들이 많지 않았나요? ZUNTATA나 구형파구락부, 알프 라이라 등 많은 올드 덕후 아재들이 그 앨범들을 긁어모으느라 정신 없는 그것들.

E: 네, 맞아요. 정말 버블의 힘이 크긴 컸던거 같습니다. 다들 사내 밴드도 했고요. 회사에 충분히 여유가 있고, 다들 취미 생활 비슷한 개념으로 인정해준 사례들이에요. 대충 지금의 한국 게임회사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복지 넘쳐나고, 으리으리한 작업실 쥐어주고. 지금의 그 열악한 레전드들도 분명 다 그걸 한 번 쥐어보셨던 분들이에요.

R: 저게 고작 10년 안짝에 무너질 수도 있군요. 바꿔말하면 이 쪽도 언제 그 꼴이 날지 모르는 것이구요.

E: 제가 보기엔 이미 그 궤도를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 덕분에 저도 운좋게 그 동경하던 사람들을 코미케에서 만나게 된 것이기도 하죠. 헌데, 일본 사람들은 좀 다른 멘탈리티가 있어요. 90년대의 황금기를 겪었는데도, 다들 오히려 겸손한 자세를 하고 있달까? 그런 때도 있는거고, 지금 같은 때도 있는거지 뭐~ 라는 느낌. 다들 그다지 지금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절망하거나 우울해하진 않아요. 그래서 더 도인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일부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크리에이터들은 대개 ‘여명기가 있고 전성기가 있고 황혼기가 있고, 매사가 그렇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대박을 내야겠다!’ 하는 생각 자체가 잘 안 느껴지는. 샘플링 마스터즈 선생님들도, ‘우리들은 전성기 때 나름 재밌는 것 많이 했으니까, 지금은 지금대로 재미나게 놀자’라는 느낌이었고요. 제가 그 분들, 또 일본에서 현업 크리에이터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딱 제게서 전성기에 올라가기 전의 그러한 에너지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요컨대 우리나라는 옛날이 그저 흑역사일 뿐인데, 일본인들은 그게 흑역사이면서도 동시에 실존하는 지금의 연장선상이라 판단하는 모양새.

R: 누적.

E: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후에 거기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젠 동급생 얘기가 나와도 하나도 부끄럽진 않아요. 그것도 지금의 저를 만든 역사죠.

R: 굳이 음악에 이야길 한정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선 어딜 가나 무언가를 누적시킨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당장 주변에 흑역사는 날려야 제맛인 분들이 참 많았고, 실제로 저도 그랬구요. 그런데 이게 또 나중에 가서 보니, 그게 사람이 되게 얄팍해지는 지름길이더라구요.

E: 물론 일본에도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들이 있긴 해요. 대개는 이름 자체를 갈아서 아예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하고 새 삶을 살아버리죠. 저 역시 많은 과거가 날아가버리긴 했는데, 특히나 2005년 전후로는 아예 90년대는 다시 거론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인드였달까요.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10년 가까이 지나니 다시 좀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이런 질문에도 다 까놓고 답변을 해드리는 이유기도 해요. 더 이상 ‘찌질했던 동인음악 시절~’이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Falcom Sound Team jdk - 幻の大地セルペンティナ (Mythical Land Serpentina, from Zwei!!)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 사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한 육칠년만 감아놓고 보면 진배님은 저희 또래들한테는 무언가 아이돌같은 분이셨거든요. ‘어, 뭐지? 저 사람 하이텔인가 뭔가에서 동인 나부랭이 했었다는데, 지금은 좀 잘 나가네?’ 하는 모양새로.

E: 네. 실제로 그렇게 보이려고 한 것도 있었어요. 헌데, 사람은 역시 퇴물이 되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R: 푸하하하하. 어쨌거나 그 아이돌님을 어떻게 만나뵐까하니, 아니? 왠 디씨에서 빠삐놈을 돌리고 필수요소질을 하고 또 왠 일갤을 하고 계신 거에요.

E: 아마 08년~09년 사이죠? 제가 개인적 사정으로 일본과 한국에서의 꿈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네요. 딱히 EDM 슈퍼스타가 되고자 일갤을 하던 것은 아니었을테니까.

R: 네. ‘디제이늅’이랑 ‘도련늼’으로 활동하시던 시절이었죠. 근데 막상 본인을 찾아놓고 보니, ‘어라? 이 사람은 맨날 왜 이렇게 불평만 한가득이고 힘들게 살지?’ 싶더라구요. 다 지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 하면 되게 좀 그런데, 사실 딱히 진배님 뿐만 아니라 일갤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절엔 되게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이 먹고 하나같이 골병드는 소리만 하고 사나’ 싶었던 적도 있었구요.

E: 아마 제가 호소에상 작업실 처음 가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 아니었을까요? ‘어? 뭔가 좀 했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열악하고 힘들게 살지?’

R: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멘탈을 추스리고, 대충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를 받아들이면 또 이제 그 다음 차례의 사람들이 그걸 보고 현자타임에 괴로워하는. 그러다보니 이젠 그게 디폴트가 되어버려서 한동안 뭔가 ‘게임음악-동인음악 어르신’들의 이미지가 그런 모양새로 박혀버린 것 같구요.

E: 지금도 소셜 포지션을 위해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게 좋겠다고는 생각은 해요.

R: 전에 트위터에서 20만원 이야기로 난리가 났었던 것도, 아마 제 주변 또래들에게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포착이 안 되는데, 그냥 딱 보고선 ‘저 사람 옛날에 뭔가 죽는 소리했던 그 사람 아님? 이제와선 뭘 잘났다고 또 저렇게 삐댐?’ 이런 모양새였던 것 같아요.

E: 그렇군요. 사실 저도 제 윗세대로부터 죽는 소리를 자주 들은 적이 있는데.

R: 네, 말씀하신대로 그 이전 세대에서도 계속 내려오긴 했겠죠. 저희가 목격한 것만 해도, 전설의 레전드 ‘트위터 섺스’ 사건이 있었고.

E: 당시에 모 분께서 제가 엔씨에 있는 동안 취직 자리좀 알아봐줄 수 없을까, 하는 개인적인 부름 있었는데, 그 시기가 마침 호소에상의 작업실을 견학했던 때와 엇비슷했거든요. 저는 그 때 ‘음악 활동의 수명’ 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루마한은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음악으로 생활을 지속해본 적이 없죠?

R: 네. 사실 그럴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쪽에 가까워요. 당장 겨우 동인 단위에서 뭔가 팀을 꾸리는 것도 참 힘든 그림이 됐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이걸 생업으로 돌리면 뭐가 나아질까? 그런데 하필 그 죽는 소리들을 다 봐왔으니 그렇지도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E: 저는 최근에 조금 다른 견해가 생겼는데, 한국이 참 빡센 환경이긴 하지만 결국은 ‘음악 활동의 수명’이란 건 최대 에너지 발산기에 무얼 하고 살았는가에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의 사운드 클라우드 슈퍼스타들. 한창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이 아주 보기 좋아요. 마치 저의 90년대 후반기같은? 물론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들이 만듦새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R: 무언가를 지속할만한 자원이 뒷받침된다면야.

E: 네, 말씀하신대로 다만 그와 별개로, 생업에 그러한 경력이 연계될 수 있느냐도 중요한 부분 같아요. 저는 운이 좋게도 그 시기가 업계가 ‘게임 음악’을 필요로 하는 시기와 겹치며, 고정적인 ‘일’과 ‘페이’라는 개념을 잡아가기 시작했죠. 지금의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99년생 정도의 젊은 친구들 에너지 자체는 멋진데, 그런 식으로 뭔가 매칭되는 산업이 있다거나,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든 ‘돈을 받을 수 있는 껀수’를 확실히 굳힌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R: 동감합니다.

E: 그러면 이 세대는 정말 아주 아주 롱런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정작 루마한 세대는 그런 연계가 부정확했다는 느낌?

R: 실제로 그러한 흐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들었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루마한 쟤는 맨날 탱자탱자 노는 것 같은데 어디서 막 이름이 계속 터져나오니까 뭔가 멋있다’는 소릴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전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음악을 생업으로 할 생각이 없는 쪽에 가까워요.

E: 네.

R: 그러면서도 당장 무언가를 지속하기 위해선 ‘프로페셔널의 사이클’을 빼앗아 쓸 수 밖에 없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안전을 보장받기는 참 어렵구나 싶은? 그 탓에 무언가를 빼앗아다 꽂아 넣어도, 이게 올바르게 동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E: 그렇군요.

R: 동인 일체에 대한 이야길 해보자면, 대체로 많은 작업물이 뚜렷한 기획이나 프로세스의 적용을 거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이뤄지는게 되게 많아요. 그 탓에 여기저기서 몰라서 당하는 그림이 참 많이 펼쳐지더군요. 역으로 저희가 그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면서 별 어이가 없는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댈 때도 많았고.

E: 그 나이땐 다 그러면서 크는거 아니겠습니까? (웃음)

R: 네, ‘마~ 다 맞으면서 크는거지~’일 수도 있는데, 요샌 다들 어디서 한 번 잘못 얻어터지면 급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버리더라구요. 사실 지금 이 아카이브 자체를 기획하게 된 것도 그런 탓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한 지는 5년이고, 흐름을 지켜본건 대충 7~8년가량 될텐데, 매 해 지날 때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모양새.

E: 실제로 이탈자들이 많죠. 갈수록 가속화 되는 듯도 싶고요.

R: 요컨대 서로 때리고 얻어터지는 가운데에서도 계속 경험치를 누적해나가야 하는데, 매번 별 말이 없다가 아예 서로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크게 한 탕 하고 양 쪽이 다 사라져버려요. 처음엔 ‘그래도 유입량이 그보단 많으니까 괜찮겠지 뭐~’ 했는데. 아, 지금 너무 꼰대같네요.

E: 전시회와 아카이브라는 기회를 통해 그러한 기점을 만드는건 좋은 생각이라고 봐요. 저와는 생각이 다르지만 분명 의미있는 시도라고 봅니다. 거기서 이제 생각이 다르다는 부분은, 저는 ‘한국의 경우엔 철저하게 금전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것에만 쐐기가 박힌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그래서 ‘음반’이 아닌, 이런 저런 ‘게임’에 주변 사람들을 꾸역꾸역 불러모은 것이기도 해요. 요컨대 ‘브랜드의 기억은 돈이 돌았던 곳에만 남는다’는, ‘그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돈이 돌지 않는 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R: 네, 저희도 그 점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어요. 문제는 반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달까요? 정말로 주변에 널린게 넝마밖에 없어서 뭘 해도 제대로 된 그림은 안 나오는데, 그렇다고 마냥 안 할 순 없으니까 뭔가를 ‘그냥’ 일단 하는 꼴. (웃음)

E: 어떻게든 곧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R: 에구, 이야기가 또 무거워졌네요. 역시 뭐 만드는 사람들끼리 환경 이야기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디제이늅 - 빠삐놈병神디스코믹스 (feat. 엄기뉴 전스틴 디제이쿠 이효리 한가인 엄정화)

“예술가는 일생에 딱 한번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M@STERPIECE를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일렉트로니카 갤러리유저인 작곡가 진배팍은 그걸 빠삐놈 만드는데 다 꼬라박았다.”

  • 디시위키

R: 이야길 하다보니 궁금해진 게 하나 있는데, 혹시 아직까지도 ‘동인’에 대한 어떤 욕망이나 소속감같은, 어떤 자각이 있으신가요?

E: 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 동인에 대한 욕망이랄까 뭘 나서서 해보겠다는 그런 쪽은 아니고, 누군가 동인 음악을 통해서 어떤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제가 어렵지 않은 선에서는 최대한 그것으로 오래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정도?

R: 졸업생 선배 클리셰네요. 아니면 흑막?

E: 네, 그냥 ‘나만 당할 수는 없지’일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일본에서 무언가를 살피며, 트랙의 우수함이나 트렌드보다도 당장 ‘역사’라는 틀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R: 그렇죠. 막말로 바다 건너면 게임 하나를 해도 위키 하나가 딱 파이면 거기에 뭔가 막 미친듯이 공략이나 야리코미 루트가 줄줄줄 들어차는 그림, 자주 보이잖아요? ‘진짜 오타쿠란 무엇인지 보여주마!’ 활활활. 뭐 옛날보다야 다들 화력이 한참 덜하긴 하지만.

E: 사실 일본도 비슷할 것 같은데요. 어쩌면 아마 대개 본인이 이루는 무언가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이 크지 않을까요?

R: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희가 뭘 제대로 한 게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웃음) 근데 그거랑 별개로 그냥 뭘 좀 같이 만들었다 하는 사람끼리 꽁냥꽁냥 차곡차곡 쌓는 그런 그림도 좀 보고 싶은데, 요샌 이마저도 좀 힘들더라구요.

E: 제가 보기엔 쌓는 방식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굳이 앨범을 내고 포스트를 써서 증명하는 것보다, 멍청한 댓글 하나가 역사가 될 수도 있겠죠.

R: 댓글 이야기 하니, 저는 이건 이것대로 이게 공개석상에서 말을 좀 막 하고 다녔다보니 후폭풍이 장난이 아니어서. (웃음)

E: 슬슬 이야기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전에 제 쪽에서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R: 네, 이래저래 이야기가 좀 샜긴 한데 워낙 두서 없이 진행한 인터뷰라 사실 크게 상관 없을 것 같아요.